대통령 형제가 기습상정 ‘배후’…상임위마다 ‘강공’
대통령 형제가 기습상정 ‘배후’…상임위마다 ‘강공’
“좌고우면 해서는 안된다” “방송법도 이번엔 가야”
민주, 무효 주장…한나라, ‘FTA·4대보험’도 힘으로
국회 파행 불가피…정국 국회의장 선택에 달려
이유주현 기자
여야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던 언론 관련법이 25일 상임위에서 기습적으로 상정되면서, 2월 국회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전’에서 ‘열전’으로 돌변했다.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미디어법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봉을 두드릴 무렵, 다른 상임위에서도 한나라당은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가결해 전체회의로 넘겼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한나라당은 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의 4대 보험을 통합해 징수하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법·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민주당·친박연대·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통합징수에 반대 의견을 밝히며 퇴장한 뒤였다.
한나라당이 갑자기 강행처리에 나선 것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속도전·강공을 주문하는 정권 핵심의 뜻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우리는 5년 국정운영의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일희일비하거나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이날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방송법 때문에 다른 법안도 논의되지 않는다”며 “방송법도 이번에 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은 회의 뒤 고 위원장과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각각 따로 만나 법안처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이로써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는 부담을 안게 됐다. 당장 고 위원장이 법안을 상정하자마자 ‘효력 논쟁’이 벌어졌다. 민주당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법안을 상정할 때는 법안명을 거론하고 의원들에게 상정 의사를 물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상정됐다고 하는 것은 억지주장”이라며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원외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 당장은 한나라당이 다른 쟁점법안도 ‘날치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 보이콧’ 전술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이럴 경우 국회파행은 불가피하다. 한나라당이 역점을 두고 있는 쟁점 법안 중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산업은행법 등은 아직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불법 집단행위 집단소송법, 집시법, 국정원법, 북한인권법안 등도 앞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원외에서도 언론노조가 지난달 6일 중단했던 파업을 26일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원내 대결을 넘어서, 언론노조를 포함한 시민사회 전체와 다시 한번 맞서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정한 언론 관련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문방위에서 관련법안을 통과시켜도 유선호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가 가로막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걸림돌이다. 김 의장은 지난 23일 “모든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상정돼야하고 상임위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충실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상임위에 상정됐다고 곧바로 본회의에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김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계속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사석에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 의지가 없다”며 거침없이 비난해 왔다.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3일까지 김 의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국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