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는 시민의 권리 경찰은 도와줄 의무가 있다
KMS/사회 2009. 2. 27. 12:58 |
“집회·시위는 시민의 권리 경찰은 도와줄 의무가 있다” | ||||||||||||
경찰종합학교 교장 박종환씨가 퇴임하면서 경찰의 가장 큰 의무는 인권 보호라고 밝혀 경찰 통신망을 뜨겁게 달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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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식 뒤풀이가 성황이었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들을 했나? 전국에서 나를 따르던 중·하위 계급 경찰관과 퇴직 경찰관 30여 명이 찾아와줘 늦게까지 술 좀 했다.(웃음) 경찰이 경찰권을 행사하더라도 헌법 명령에 따라야 하지 않느냐, 법 질서를 잡자고 하더라도 균형 잡힌 사고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을 심각하게 나눴다. 굳이 KDI의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법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 손실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헌법과 천부 인권도 중요하다. 경찰권 행사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소수자의 절박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경찰 편의, 경찰 중심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 국민이 어느 한 군데가 응어리져 있다고 느낀다면 법 질서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장 요원들에게는 너무 원론적이어서 공허하게 들릴 수 있지 않겠나? 원론은 중요하다. 지휘관이 강경대응만 강조하면 에스컬레이트된다.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강하게 대처하되,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자.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과정이 적정해야 한다. 과잉은 금물이다. 비례도 고려해야 한다. 참새를 보고 대포를 쏠 수야 있나. 그런 원칙만 지킨다면 현장에서 요원이 당황할 일이 없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처럼 들린다. 2002년 용산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효순·미선 양 사건이 일어났다. 7~8개월간을 백 수십개 중대를 지휘하며 미군 부대 앞에서 시위대와 대치했다. 그때도 분명하고 단호한 원칙을 지켰다. 이를테면 시위대가 1만명, 2만명 모이면 차로 한두 차선 틔워줘서는 안 된다. 경찰은 불법 폭력 시위를 막아야 하기도 하지만 시위를 도와줄 의무도 있다. 집회와 시위는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때 시위대에게 편도 차선을 모두 틔워줄 테니까 신속하게 이동하라고 제안했다. 그 대신 허용한 차선에서 벗어나면 강력하게 대응했다. 경찰은 시민이 불법 시위를 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불법이 발생하면 천천히 회복해야 하고. 퇴임사에서 인권을 강조한 것은 요즘 경찰이 균형 있는 사고를 못한다고 걱정하기 때문인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현장 경찰은 지휘관의 메시지를 따라가게 돼 있다. 경찰권 발동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방법이 적정한지, 성급하지 않은지, 균형 있는 판단과 사고가 부족하지 않은지 우려된다. 요즘처럼 경찰이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경찰의 역할이 커졌다기보다는, 행동대장처럼 몸으로 때우는 쪽으로 간다. 타 기관들(검찰이나 국정원을 지칭하는 듯)은 지나치다 싶게 직무 범위가 확대되고, 권한이 강화되는데 법이나 제도상 경찰의 힘은 예전 그대로다. 이를테면 집회와 시위에 관한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한다면 당연히 주무 부처는 경찰청이 돼야 한다. 모든 자료와 정보가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장이 경찰청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옳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한 다양하고 쓰라린 실패 경험을 쌓은 경찰에게 판단을 맡기면 잘할 텐데 회의는 경찰청 밖 타 기관에서 열리고, 판단도 타 기관 몫이다. 촛불 집회 때 보지 않았는가. 현장 경찰은 강경에서 온건으로, 좌에서 우로 회의가 춤춘다고 느낀다. 청와대 가는 시위대 막는 사람이 국정원 직원인가, 검찰 직원인가. 경찰 아닌가. 그런데 왜 엉뚱한 사람들이 판단하는가. 어청수 청장이나 김석기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에 충성을 다했는데, 끝내 옷을 벗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공무원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따라야 한다. 코드가 맞는 사람이 중요 보직을 맞는 게 맞다. 정부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나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 청장은 열심히 하지 않았나. 정의의 관점에서나 혹은 헌법의 명령을 잘 따랐는가 하는 기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정부 방침에는 정말 충실했다. 그런데도 나가라니, 납득할 이유가 없는 거다. 김석기씨를 시키기 위해서였는지, 그건 확인을 못했으니 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같은 임기제에 똑같이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은 멀쩡하니까, 이거 경찰을 너무 가볍게 보는 거 아니냐, 막 대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경찰 내부에 있다. 김석기씨도 살려보려고 내부에서 노력들을 많이 했다. 인터넷 여론조사에도 참가하고 글도 남기고. 김석기씨가 예뻐서가 아니라 조직의 수장이 두 번이나 하차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경찰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용산 참사 사건을 보면서도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당연히 법 질서는 확립해야 한다. 화염병이 등장하고 폭력적인 방법이 모두 동원되는 현장인데. 그런데 성급했다. 농성하러 들어가는 걸 포착했다면 바로 뒤따라 들어가 잡아내도 괜찮다. 하지만 이미 농성자가 화염병과 시너를 쌓아놓고 자위력을 갖췄다면 그건 바로 진압할 수 없는 거다. 위험 물질을 거의 소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분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배설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 좀 데려갔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온다. 시너가 폭발했을 경우에 대비해 다른 소화 장치도 마련했어야 했다. 사건이 처음 났을 때 나는 참모들한테 그랬다. 열흘 정도는 갈 것 같다고.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득달같이 진압했더라. 아마도 경험이 많은 경비 계통이나 정보 라인에서는 좀더 기다릴 것을 건의하지 않았을까 싶다. 불법 무질서를 제압한다고 그 사람이 죽어도 좋을 정도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경찰청장직을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고 건의해 화제가 됐다. 순혈주의 폐해가 심하다. 경찰은 뭐랄까, 나는 난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알아서 기는 게 체질화됐다. 이런 데서 청장이 나와선 안 된다. 흔들림 없이 국민만 쳐다보면서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문민이 맡았으면 한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는 분도 있지만 리더는 철학만 뚜렷하면 된다. 실무는 차장이 다 할 수 있다.
싫어했다. 조직을 팔아먹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하위 계급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고 좋아한다. 중·하위 계급은 경찰권 행사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상급자 앞에서는 쪼그라들고 마는 이런 순혈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중·하위직은 내 의견에 대부분 동조하는 걸로 안다. 정치인이든 법률가든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를테면 이재오 전 의원이나 한완상 전 총리, 강금실 전 장관 같은 분들. 충북지방경찰청장 때는 지역 기관장 모임에 좀처럼 참석하지 않아 말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술 마시고, 골프 치고, 여흥하고, 대개는 친목 모임이더라. 토호들까지 낀 그런 모임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어떤 때는 40~50명이 모일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어서 한두 번 가다 말았다. 그래도 필요하면 당사자와 직접 만나 술도 먹고 골프도 치고 다 했다. 그런데도 지역 질서와 화합을 해친다는 말이 들렸다. 모임에 잘 나가 어울리고 타 기관 민원에 신경 썼으면 적이 많지 않았을 텐데, 결국 내 손해다. 2006년 제주경찰청장 때 한·미 FTA 제주도 회담을 둘러싸고도 타 기관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안다. 처음에 회의가 제주도에서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에서 5000명, 제주에서 1만명, 합쳐서 1만5000명 정도가 시위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경찰 병력도 백개 중대는 서울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병력을 수송할 수단도, 숙박 대비도 안 돼 있었다. 내가 또다시 경찰관을 체육관에서 재울 수는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발표가 늦어졌다. 타 기관에서 내가 한·미 FTA를 반대한다, 시위 인원을 부풀려 보고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청와대에서도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열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집회 시위는 경찰청 소관이니 타 기관은 정보만 제공하면 그만이라며 버텼다. 제주도 58개 시민단체 대표를 매일 돌아가며 만나 시위가 과격해지지 않도록 설득했다. 하루에 저녁을 세 번이나 먹었다. 그렇게 해서 제주경찰청 주관으로 큰 사고 없이 행사를 치러냈다. 최근 청와대 비서관이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활용해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식의 메일을 보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경찰에 대한 외압이 심한 것 같다. 일선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말도 못한다. 뼈 아픈 것은 홍보를 강조하다 보니 수사 기법이 범죄꾼들에게 모두 알려졌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범행 수법이 발전하고 요행 범죄가 늘어나 해결이 어려운데 걱정스러운 일이다. 정작 중요한 수사 기법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해명했는데? 내가 보기엔 선을 넘었다. 내근 요원을 현장으로 돌리거나, 3교대 근무를 4교대로 바꾸는 등 현장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의 일선 경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2~3일에 한 번씩은 밤을 꼬박 새운다. 그냥 대기하는 게 아니라 온갖 잡무를 처리하면서. 사흘에 한 번씩 시차 적응을 하는 꼴이다. 고위직으로서 누릴 걸 다 누렸으면서도 현장을 개선하지 못해 미안하다. 인원이 부족하기보다는 경찰 간부가 눈에 보이는 행정에 집착해 일선이 골탕을 먹는다는 불만이 많던데. 높은 사람들이 면피하려는 게 문제다.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시켜야 한다. 앞으로 뭘 할 건가? 전국을 다니며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일선 경찰들과 소주 한잔씩 나누려 한다. 한 6개월 걸리겠지. |